러닝타임이 169분, 약 3시간으로 길지만 존 윅 시리즈에 대한 믿음으로 오히려 기대가 되었다. 존 윅의 전작은 다 봤으나 최근에 본 것이 아니어서 기억은 나지 않는다. 대충 존 윅이 자유의 몸이 되겠답시고 설치고 다녀서 최고 의회의 심기를 건드렸고 윈스턴은 자기 호텔 살려보겠다고 의회에게 존 윅을 바치려 했다는 내용만 기억이 난다. 사실 딱히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 앞에 펼쳐질 3시간의 최신 기술의 액션 시퀀스이다.
영화의 설정이 영리하다고 느꼈다. 존 윅은 먼치킨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수도 없이 쉽게 죽이는데 이에 대해 거부감이나 비판을 피하기 위해 '과도하게 판타지컬하고 작위적인 세계관과 대사, 의상' 등을 곳곳에 배치하였다. 어차피 다 환상이고 사실이 아니니까 맘 편하게 액션을 구경하라는 감독의 말이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영화의 설정과 기본적인 스토리는 액션의 당위성을 위한 도구로써 사용된다. 방탄 양복은 총소리를 더 들려주기 위함이다.
영화에서 내가 최고로 꼽고자 하는 장면은 오사카에서의 쌍절곤 시퀀스와 견자단 장면, 그리고 새벽 파리의 건물 안에서 샷건을 날리며 싸우는 장면이다. 존 윅이 쌍절곤을 휘둘러서 무기를 날려버리거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거나 머리를 가격하여 정신을 못 차리게 하는 액션으로 쌍절곤의 활용도를 150%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주방에서 견자단의 맹인 액션과 영춘권은 환호성을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비록 썬글라스를 썼지만 정면을 바로 보지 않으면서 극도의 순발력이 필요한 액션을 진행하는데 배우이자 무술가로서의 견자단에 박수를 보낸다.
존 윅이 일출까지 성당에 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풀은 암살자들과 건물 안에서 싸우는 장면은 현대 액션 영화에서 최고의 장면으로 뽑고 싶다. 계단에서 나선으로 올라와서 관객의 시선을 이리저리 분산시키며 단조로움을 피했으며 카메라는 스테디하지만 내부에서 벌어지는 일은 전혀 그렇지 않게 대비시키며 장면에서 벌어지는 일을 효과적으로 강조시켰다. 그러다 부드럽게 버즈아이 샷으로 이어져 세트의 전체를 보여주는데 여기서부터가 압권이다.
액션씬을 근접으로 찍고 컷 전환을 자주 하게 되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관객이 배우의 전체적인 몸의 움직임을 완벽히 캐치하기 어렵다. 감독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극단적으로 카메라를 멀리, 그리고 위에 배치한다. 관객들은 존 윅의 전신을, 그리고 그가 정확히 어디서 무얼 하고 있는지 이전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피사체가 작아졌기 때문에 더 집중해서 보게 된다. 멀어져서 타격이 잘 안 보이고 움직임이 작아진다는 단점은 샷건으로 해결하였다. 여기서 존 윅의 현상금 인상 소식을 들은 암살자들 중 하나가 샷건을 준비하는 장면이 거기서 해소되면서 통쾌함 마저 느껴진다.
추가적으로 위에서 보게 되면 존 윅이 아닌 적들의 움직임도 모두 동시에 볼 수 있게 돼서 급박하고 1분 1초를 다투는 이들의 사투를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파리 건물 시퀀스는 기발하지 못해 경이롭기까지 하다. 액션씬을 어떻게 하면 관객들에게 새로운 방법으로 보여줄 것인지, 단점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고민한 흔적이 보인다. 한 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원테이크 장면을 사용하는 이유를 극대화시킨 시도였다.
장르 영화는 처음 세상에 나와서 여러 영화에 거쳐 공식과 컨벤션, 아이코노그라피를 구축하고 이것이 고착화되어 쇠퇴하게 된다. 장르 영화의 새로운 돌파구가 되는 것이 새로운 기술과 컨벤션의 변형이다. 존 윅 4는 액션을 어떻게 촬영을 해야 할 지, 액션에 사용되는 소품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를 연구하여 이를 이루어 내었다. 매너리즘에 빠진 액션 영화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장르의 권태를 뚫고 날아간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더 이상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창작물들은 그렇게 창의적이지 않다. 사람들이 지구 말고 다른 세상에 살아본 것도 아니고 사람 머리에서 나올 수 있는 아이디어는 다 그게 그거기 때문이다. 그 예로, 다른 것을 참고하지 않고 혼자 아이디어를 떠올렸더라도 알고 보면 이미 누가 한 경우가 많다. 아이디어의 구현이 과포화 된 현재 사람들이 새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기존 것들의 해체, 재배치 등이며 이런 생각을 포스트 모더니즘, 사자성어로는 온고지신이라고 한다. 이전의 대작들을 변형하여 자신의 영화에 녹여내고 전혀 목적이 다른 촬영 기법과 스토리텔링 기법을 액션에 접목시킨 점에서 존 윅 4는 포스트 모더니즘 액션 영화라고 할 수도 있다. 액션 영화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감독과 모든 스태프에게 존경을 표한다.
영화는 파리에서 상당 수 로케이션을 진행했다. 몽마르뜨 언덕과 그 위에 있는 샤크레쾨르 대성당, 에펠탑에서 중요한 장면이 되었다. 여행을 갈 때마다 근처에 있는 영화 촬영 장소를 항상 가는 편인데, 장소를 한 번 방문한 이후로 영화를 볼 때마다 그 추억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파리 여행에서의 추억이 떠올랐다. 폭우가 쏟아지던 몽마르뜨 언덕, 에펠탑 주위를 거닐다 꼭대기에 올라가봤을 때, 내가 세상에서 제일 가보고 싶던 샹젤리제 거리를 걸으며 감동에 벅차올라 살아있음에 감사를 느끼고 어머니에게 연락을 했던 때가 떠올랐다.
작년에 뉴욕에 갔을 땐 거의 막바지에 컨티넨탈 호텔을 억지로 가기도 했다. 계단에 손도 얹어보고 옆의 카페에서 커피와 브라우니도 먹어봤다. 역시 가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듯 영화 속 명소를 한 번 가보면 영화를 볼 때마다 색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다. 다음에 여행을 가면 영화 촬영지 위주로 가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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