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5 13:00 압구정 CGV ART1관
영화 러닝타임을 모르고 갔다.
나오고 3시인 줄 알았는데, 4시가 넘더라.
영화가 빠르고 흥미진진한 내용은 아닌데...
이 영화에는 많은 레퍼런스가 있다.
사뮈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그리고 안톤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
영화를 같이 관람한 분의 말을 빌리면,
<고도를 기다리며>는 앙상한 나무 하나 밖에 없는 배경에서 두 남자가 대화하는 방식으로 극이 진행되는데,
이는 시퀀스가 주로 두 인물의 대화만으로 진행이 되는 류스케의 영화와 닮아 있다고 한다.
또 사뮈엘 베케트는 자신의 극을 자신이 일일히 여러 나라의 언어로 직접 번역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가호쿠의 극도 다국어로 진행이 된다.
그래서 영화에서 가호쿠는 연출자로서 <바냐 아저씨>를 무대에 올리지만
전체적으로 영화는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한 오마주라고 한다.
내가 아는 유일한 레퍼런스는 비틀즈의 노래다.
<Drive My Car>는 <Rubber Soul>의 첫 트랙으로, 경쾌한 기타로 시작해서
'나는 스타가 될테니 넌 내 차를 운전해 줘, 그럼 널 사랑해줄 지도 몰라'라는 가사를 노래한다.
하루키의 다른 소설 <상실의 시대>의 원제는 <Norwegian Wood>로,
이 역시 같은 앨범에 수록된 곡이다.
<상실의 시대>를 읽은 지가 오래 돼서 <Norwegian Wood>와의 연결점은 모르겠는데
<Drive My Car>를 보면 딱히 큰 연결점이 있을 것 같진 않다.
그냥 곡 제목을 보고 운전사라는 소재를 얻었거나,
제목을 생각하다가 우연히 떠올라서 붙였거나 둘 중 하나인 게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큰 연결고리는 찾지 못했다.
사람들은 모두 저마다의 언어로 세상을 이해한다.
내가 생각하는 '집'의 정의와 저 사람의 것은 다를 수 있다.
가호쿠는 그런 언어가 다르더라도, 다국어로 진행되는 자신의 연극과도 같이
서로 완벽히 사랑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는 오토와 그런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왔을 것이다.
오토는 불륜을 일삼고 있었지만 그의 그런 생각 때문에 화를 내지도 그녀에게 티를 내지도 않았다.
육체는 다른 이를 사랑해도 정신은 자신을 사랑한다고 굳게 믿으며 그걸로 됐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른다.
다카쓰키는 다르게 생각한다.
언어가 다른 두 사람끼리는 절대 통할 수 없고, 통하는 건 몸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공허하다.
그리고 그는 통하는 두 연인에게 질투심을 느끼고 그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다카쓰키가 술집에서 말한 가호쿠를 향한 질투는 그런 질투였을 것이다.
아마 오토 씨의 극을 연기하면서... 라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고 그녀와의 성관계를 은유하는 것 같다.
그는 나중에 '타인과 말이 안 통해서 때려 죽여버린'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다.
나중에 다카쓰키가 차에서 오토와의 이야기를 고백할 때 극에 굉장히 몰입하였다.
어깨 위치에서 계속 둘을 촬영하다가
어느새 눈물을 글썽이며 자백하는 다카쓰키만 보여주는데
나중에 와타리가 말하는 '진심을 말하는 것 같다'는 것은 이걸 말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오토의 이야기 마지막 부분은 아마 가호쿠만 못 들었을 것이다.
그것은 가호쿠를 내적으로 죽인 자신의 죄책감에 대한 이야기이므로.
다카쓰키의 신념과 공허함을 받아들인 가호쿠는 이후 보란 듯이 조수석에 타서
와타리와 같이 담배도 핀다.
정신적인 합일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가호쿠의 반항적인 메시지일 것이다.
이 이후부터는 와타리가 차에서 그를 기다린다.
바냐는 그와 너무 닮아있어서, 그 자신을 보기가 힘들어서 바냐 역을 맡기 꺼려했었다.
와타리의 세상으로 들어간 (이 시작점에서의 적막은 압권이다)
가호쿠는 그동안 자기 자신에 대해 솔직하지 않았음을 깨닫고 바냐 역을 맡기로 한다.
(와타리의 어머니가 묻히고 와타리가 극 중 처음으로 감정을 보이는 장면의 배경은 <고도를 기다리며>를 닮아있다.)
그리고 매번 오토의 목소리로 녹음된 소냐와 대화하던 가호쿠는 마침내 극에서 오토 없는 자신을 받아들이며
소냐의 말처럼, 자신을 받아들이고 칠성 장어처럼 고통을 껴안고 버티면서 살아가기로 한다.
'운전을 해줘'라는 말은 동행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운전자에 대한 신뢰 또한 느껴지는 말이다.
신뢰하는 사람과의 동행은 우정이나 사랑 혹은 둘 다일 것이다.
언어가 통하지 않는 반려동물과도 사랑할 수 있듯,
가호쿠는 그의 신념대로 언어가 없는 언어를 가진 사람과도 사랑을 했다.
와타리와 함께 그 자신을 돌아보는 용기를 가지는 동행을 했고, 끝에서 그는 치유받고, 성장했다.
이제 와타리가 차를 탈 차례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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