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35)
존 오브 인터레스트 (2023, 조나단 글레이저) 들어가며   감각 적응(sensory adaption)이란, 특정 자극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때 그에 대한 감각이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계속되는 소음에 무뎌지거나, 처음에 강하던 향도 시간이 지나면 잘 맡을 수 없게 되고, 피부가 의자나 옷에 닿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그 예다. [1] 사람들은 그들의 눈과 귀를 채우는 뉴스에도 역시 적응한다. 정치인들의 비리, 공정하지 않은 법안, 전쟁과 부조리가 풍기고 내는 악취와 소음이 이미 전세계를 가득 채우고 사람들의 감각은 마비된다. 가끔 가다 도처에 깔린 흉물들을 뚫고 나오는, 유명인들의 이슈와 동물 사진 등의 새로운 자극에만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다. 그렇게 악이 평범해진 사이, 악인들은 대중들의 무관심 속에서 오물들을 열심히 쏟아내고 있다. 는..
매그놀리아 (1999), 폴 토마스 앤더슨 / 숏 컷 (1993), 로버트 알트만 들어가며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은, 수많은 주제와 제시하고 생각할 거리를 던지지만, 그 중 하나는 구원으로써의 영화이다. 후세인 사브지안이 영화를 통해 얻었던 실제 구원은 현실과 영화의 벽을 허물며 관객에게 더 따뜻하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영화가 누군가의 구원이 될 수 있는가'란 질문은 내가 이전에 봤던 영화 의 주제와는 반대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둘은 알고 보면 충분히 양립할 수도 있다. 나는 현실 속에 결국 영화가 있으며, 영화 또한 현실이니 그곳에서도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고 한 생각이 나를 빛으로 이끈다면, 내가 내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힘이 영화에서 출발한다면 영화 또한 구원자이며, 현실이다. 프레임 속의 프레임 속의 프레임... 안과 밖에 있는 모든 것..
거짓의 F (1973), 오손 웰스 "영화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기극이다." 고다르가 했던 말이다. 정확히는, 고다르가 1963년 발표한 영화 에 나온 인물의 한 대사이다. 그리고 이는 내가 8년 전 대학 시절 만들었던 영화 블로그의 티저(teaser)이기도 했다. 블로그의 메인 페이지의 정중앙에 무려 h3 태그로 대문짝만하게 걸려있었다. ('h3 태그가 뭔데?'라고 하는 사람은 필자의 빈약한 표현력을 탓하시라.) 그 당시에는 뭔가 앞에 내보일만한 영화에 관련한 명언이 필요했었고, 고다르가 제격이었다. 아마 '영화 고다르 명언' 따위로 검색해서 나오는 멋있어 보이는 걸 선택했지 싶다. 고다르의 그 말은, 나에겐 이해할 순 없지만 있어보이는 말이었다. '영화가 왜 사기야? 영화는 영화고 사기는 "남한테 거짓말을 쳐서 이득을 보는 행위"..
안녕하세요 (1959), 오즈 야스지로 어린 시절은 참 순수했다. 내가 원하면 원하는 것이고, 싫어하면 싫어하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마음도, 세상에 대한 시선도 내가 바라보는 대로 보는 순수하고 맑은 시절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경험과 지식이 늘어난다. 말도 마음도 이젠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볼 수 없고 주변 환경과 맥락을 따져가며 때론 의심하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게 된다. 안녕한지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안녕하냐고 물어본다. 어렸을 때는 반가워서 인사했다면 지금의 안녕하세요는 많은 목적을 가질 수 있다. 이것이 그러면 타락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좋고 나쁜 게 어디 있겠는가. 어렸을 때 유희왕 카드가 그렇게 소중했었다. 나는 동생과 사촌 동생에게 내가 좋아하는 장난감들을 항상 주면서 살았다. 당연히 자의적인 것은 아니었..
홀리 마운틴 (1973),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인간은 모순적이다. 육체에 갇힌 신성한 이성은 어느 때는 잘 유지되다가도 감각의 농간으로 무너지고 흔들릴 때가 있다. 그 이전에 이성이 그렇게 고결하긴 했던가. 인간으로 태어나 인간으로 사는 것을 특별하게 여기며 규범에 순응하고 속죄하며 사는 것은 오만이다. 진실되고 아름다울 필요가 없다는, 그럴 만한 존재도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며 왜곡된 과거가 뭉친 응어리를 단죄하며 바다 속에 던져버리면 한결 가볍게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육체와 욕망을 벗어던지며 가벼워짐을 이야기하는 영화는 호화스런 이미지로 점철돼있으니 이 역시 모순적이다. 실재를 이야기 하는 이들도 인간, 당신도 인간. 타인을 갈망하며 인정받고 싶은 마음, 성적 욕망과 광기에 휩싸이는 우리 모두 인간. 애초에 논리적이지 않으니 자기파괴를 할 이유..
영화에서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 액션 영화를 예시로 속도가 매우 빠른 액션 영화에서도 정보는 필요하다. 이럴 땐 어떻게 정보를 전달할 것인가? 일반적으로 주인공의 맨몸 격투 시퀀스는 매우 속도가 빠르다. 그리고 시리즈 같은 일반적인 영화들은 첫째로 배우들끼리 긴 합을 맞추기가 까다롭고, 둘째로 배우가 실제로 다치는 것을 방지하고, 셋째로 너무 위험한 장면에선 스턴트를 사용하기 위해 배우가 맞는 장면은 생략하고 편집한다. 주인공의 주먹이 날아가는 샷 하나와, 악당이 주먹을 맞고 날아가는, 다른 각도에서 찍은 짧은 샷 하나를 이어붙이면 관객들은 악당이 실제로 주먹으로 맞았다고 착각하게 된다. 위의 사진은 에서 리암 니슨이 분한 브라이언 밀스가 딸을 찾는 과정에서 만난 악당의 머리를 거의 270도 회전해서 벽에 박아버리는 장면이다. 머리를 돌려버리는 샷과 박는..
영화에서 정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 정보 전달에 있어 영화와 책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일단 책은 혼자서 자신만의 템포에 따라 읽지만 영화는 일반적으로 극장에서 다수가 동시에 관람한다. 극장에 앉아서 영화를 볼 때는 정보가 실시간으로 전달되고, 그래서 좋든 싫든 지금 내게 보이고 들리는 장면들을 계속 보고 집중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너무 빨라서 이전 장면이 무엇에 관한 거였는지 생각하기도 전에 다른 장면들이 계속 진행되어 정신 없었던 경험도 있을 것이다. 어떤 때는 화면의 어디를 봐야 할 지 모르고, 갑자기 뜬금 없는 데에서 주인공이나 정보가 튀어나와서 뭘 했는지, 뭐가 지나갔는지 제대로 못 보고 넘어간 일도 있을 것이다. 책에선 정보가 주어지는 시점을 독자가 제어한다. 언급되고 있는 이름이나 사건의 정황이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문장..
멜랑콜리아 (2011), 라스 폰 트리에 2023. 05. 14 생물은 생존하고 번식하기 위해 (유전자가 살기 위해) 세대에 걸쳐 진화해가며 필요한 기관은 남기고 필요없는 것은 버린다. 그렇다는 것은, 인간에게 있어 감정 역시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라는 말이 된다. 감정이란 외/내부에서 받아들이는 상황에 대한 인간의 반응으로 이것은 유전자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낸 수단이다. 즉, 감정은 인간의 도구이다. 친숙하지 않은 도구를 설명서 없이 다루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감정이란 이 어디로 튈 지 모르는 말괄량이 같은 녀석은 볼 수 조차 없다. 또 한 가지 차이점이라는 것은 누군가가 설명서를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감에 있어 감정의 덕을 잘 보지 못하게 된다. 그 정도로 끝나면 다행이지, ..
토리와 로키타 (2022), 장 피에르/뤽 다르덴 2023.05.01 씨네큐브에서 다르덴 형제 감독님들과 함께. 영화 뿐 아니라 문학, 예술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고 해석할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영화는 텍스트보단 영상과 소리의 비중이 더 크기 때문에 더욱 풍성하게 사유할 수 있고 심상이 크게 다가온다. 영화는 영상, 플롯, 연기 등 복합적인 요소를 아우르기 때문에 보는 사람마다 주요하게 보는 포인트가 다르고 나의 경우엔 카메라의 의도가 그렇다. 카메라는 영화의 또다른 등장인물로서 살아숨쉬는 하나의 객체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질감과 분위기를, 인물의 현재 상태 뿐 아니라 그의 인생에서의 태도와 가치관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는 감독의 카메라의 역할이 크다. 사회에서 많은 시각적 요소를 보며 학습된..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1968), 스탠리 큐브릭 2023.05.01 압구정 CGV 아트2관 오디세이(odyssey)는 서사시라는 뜻이다. 정확히는 호메로스가 쓴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담은 대서사시의 제목으로, 현재는 일반 명사로서 '다양한 경험을 담은 모험담'이란 뜻으로도 쓰이고 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우주인 데이브가 목성으로 향하는 여정 - 나아가 인류의 시발점부터, 나아가야 할 끝없는 미래로의 여정을 담고 있다. 영화는 전체적으로 교향곡을 표방하고 있다. 영상이 나오기 전에 암전 속에서 오케스트라가 조율하는 소리 같은 것이 몇 분이고 흘러나오며 영화의 시작을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시작되는 음악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A to Z가 이 음악 속에 있다고 강렬하게 주장하는 듯 하다. 그리고 그게 결코 텍스트로 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