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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토리와 로키타 (2022), 장 피에르/뤽 다르덴


2023.05.01 씨네큐브에서 다르덴 형제 감독님들과 함께.


  영화 뿐 아니라 문학, 예술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정답이 정해져 있지 않고 해석할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도 영화는 텍스트보단 영상과 소리의 비중이 더 크기 때문에 더욱 풍성하게 사유할 수 있고 심상이 크게 다가온다. 영화는 영상, 플롯, 연기 등 복합적인 요소를 아우르기 때문에 보는 사람마다 주요하게 보는 포인트가 다르고 나의 경우엔 카메라의 의도가 그렇다. 카메라는 영화의 또다른 등장인물로서 살아숨쉬는 하나의 객체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질감과 분위기를, 인물의 현재 상태 뿐 아니라 그의 인생에서의 태도와 가치관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는 감독의 카메라의 역할이 크다. 사회에서 많은 시각적 요소를 보며 학습된 관객들은 디테일한 촬영 구도와 카메라의 전체적인 신조를 통해 확신할 순 없더라도 본능적으로 감독의 의도대로 느낄 수 있다. 몇몇 선한 어른들을 제외하곤 악행을 강요하는 어른만 주위에 있어 기댈 곳이라곤 밀입국할 때 만난 서로 밖에 없는 토리와 로키타의 답답하고 갇혀있는 상태를, 전체적으로 과도한 클로즈업과 인물을 가두는 듯한 프레이밍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는 인물의 감정을 효과적으로 나타낼 뿐 아니라 프레임 밖에 있는 사물들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며 관객들이 영화를 상상하게 만든다. 그리고 사실적인,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 위하여 핸드헬드 기법을 사용한 듯 하며 다르덴 감독은 추가적으로 카메라가 인물의 동작을 예상하지 못하는 듯하게 움직인다고 하셨다. 또한 뉴스를 한 번도 안 본 사람이 아니라면 난민 문제가 세계적으로 화두가 되고 있으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아직도 아동 학대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관객의 배경지식과 결부되어 결과적으로 이 영화가 결코 완전한 픽션이 아니며 지금도 어딘가 일어나고 있다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게 된다.

  플롯과 등장인물에 대해서도 말하자면 영화는 사실주의로 가장을 하고 있지만 역시나 감독이 심사숙고해서 시나리오를 쓴 것을 알 수 있다. 붙어있는 두 물체가 자력으로 붙어있는지 아닌지 알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정답은 둘을 떼어보는 것이다. 만일 맞다면 둘은 서로를 강하게 끌어당겨 다시 붙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거시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 자력이라면, 사람을 엮는 가장 강력한 힘은 사랑이다. 토리와 로키타의 우정, 가족애를 보여주는 최고의 방법 역시 둘을 떼어놓는 것이다. 그 후 둘의 반응을 보여주면서 관객이 이입하게 할 수 있다. 로키타의 반응은 공황과 불안 증세이고 토리는 로키타에게 가기 위해 목숨을 건다. 그리고 둘 간의 자력이 난관을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다른 어른의 도움을 최소화하였다. 그러면서도 토리의 대리 송금 요청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어른이나 둘을 진심으로 살피고 도와주는 보육원 언니, 최종적으로 도와주진 않았지만 그래도 차를 멈춘 사람들을 등장시키며 세상에 자그맣게나마 남은 희망을 보여준다. 따로 설명해주지 않아도 영화를 보고 나면 이 세상에 둘 간의 우애보다 강한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로키타의 죽음에 슬픔을 느끼면서도 선행을 베푼 어른들과 그녀의 곁에 있던 사람들을 보며 희망을 얻는다. 추가적으로 항상 영화를 이야기의 중간부터 시작하여 전체적인 맥락을 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를 통해 간접적으로 추리해 나가야 하는 플롯은 영화가 일방적으로 수용되는 교과서가 아닌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놀이터가 되게 한다.

  영화는 기존에 연기를 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배우로 기용한다. 다르덴 감독은 <내일을 위한 시간>의 마리옹 꼬띠아르를 제외하면 항상 신인 배우를 스크린 앞에 세웠다고 한다. 최근에 본 영화 <자전거 도둑>도 그러하였는데 이는 감독의 철학과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다르덴 감독님들은 배우를 영화를 재현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사람으로 본다고 하셨다. 그래서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인물을 먼저 설정하고 그 인물이 처한 상황과 가장 비슷한 실존 인물들을 찾아가 인터뷰한다고 하셨다. 이와 관련해서 조르주 멜리에스의 로켓 발사 실험이 떠올랐다. 조르주 멜리에스는 로켓이 우주로 발사되는 영상을 성인과 어린 아이들에게 따로 보여주었고 반응은 상이했다. 일단 그가 활동했던 시기는 1900년대 초반이기 때문에 당연히 실제 로켓은 발명되지 않았다. 그래서 영상을 본 성인들은 별로 감흥을 느끼지 못하였지만 어린 아이들은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흥분하여 소리까지 질렀다고 한다. 이 실험은 창의성에 대한 무지와 순수함의 힘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다. 성인과 달리 어린이는 자신이 보는 것에 대한 선입견이나 편견이 없는데, 이는 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실험은, 니체가 말한 위버멘쉬와 같은 맥락으로, 창의적인 노력에서 어린아이 같은 경이로움과 호기심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실, 전문 배우더라도 자신과 완전히 다른 사람을 연기하기란 쉽지 않고 어쩔 수 없이 이전의 배역과 비슷한 점이 있기 마련이다 (물론 그 모습도 배우의 본 모습이겠지만). 이 영화의 배우 분들은 Acting이 아닌 Being 함으로서 그 분들을 자연스럽게 보여준 것이라 생각했다. 뿐만 아니라 리허설을 많이 진행하고, 처음에 동작부터 먼저 맞춰보며 배우 후보들을 만날 때 걷거나 뛰고, 다리를 다치면 어떻게 하는지 등 움직임을 중점적으로 보는 다르덴 감독들의 디렉팅 방식도 흥미로웠다. 토리 역을 맡은 배우는 신체적 에너지가 뛰어난 사람이라고 하셨다. 항상 용수철처럼 뛰어다니는 토리는 그의 불안감과 쫓기는 심정을 대변하는 듯 하며 보는 사람까지 불안하게 만든다. 모두가 그가 달리고 자전거 타는 장면을 보고 처러다 차에 치이진 않을까 걱정했을 것이다. 이렇게 영화가 현실 밖으로 튀어나오는 순간이 나는 가장 고양된다고 느낀다.

  토리와 로키타는 비록 밀입국 배에서 만난 남이지만 서로의 빈 자리를 채워주며 끈끈한 우정을 선보인다. 마치 서로 부족한 전자를 채우는 공유결합과 비슷한데 이 역시 화학결합 중 가장 강력하다. 로키타는 키가 크지만 토리처럼 몸이 빠르지 않은 반면 나이가 좀 더 있어서 경험이 많고 성숙하다. 그 때문에 부담감이 있긴 하지만. 토리는 날렵할 뿐 아니라 용기 있고 정신적으로 강하여 공주를 용에게서 구하는 지그프리트처럼 로키타를 구하고, 불안해하는 그녀에게 힘이 돼준다. 가족에게 버림 받았지만 구원한 건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토리는 끝내 로키타를 잃었지만 그의 장점인 강한 정신력과 로키타가 자신에게 보여줬던 타인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바탕으로 끝내 살아갈 것이다. 그의 굳은 결심이, 토착어로 그들만의 노래를 부르면서 울지 않는 굳건한 모습에서 나타난다. 비록 끝은 로키타의 죽음이지만 완전히 절망적이지 않고, 어떻게든 보존해야 할 소중한 가치들은 여전히 남아있다. 이것이 사람들이 힘들어도 세상을 계속해서 살아가는 이유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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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를 보고 다르덴 감독들에게 질문하고 싶은 것이 있었지만, 아쉽게도 하지 못하였다. 내용은 '배우들이 어린데도 극 중에서 좋지 않은 행동들을 강요 받고 자행하는데 감독들이 촬영 전에 이것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는지?'였다. 어린 아이가 등장하는 영화를 보면 항상 이런 질문이 떠오른다. 어린 아이들은 스펀지와 같아서 보고 듣는 모든 것에 영향을 받는다. 나는 아이 앞에서 어른이 경멸적인 욕설을 대사로 하는 것도 불편하게 느낀다. 후시 녹음을 썼겠지, 원래 같이 없는데 편집으로 같이 있는 듯 찍었겠지, 아니면 끝나고 설명을 제대로 해줬겠지 하면서 넘기는 편이긴 하다. 옛날 영화일 수록 어린 아이에 대한 연구가 적어서 아역 배우가 담배를 핀다거나 하는 장면도 등장하는데 사실 안타깝기만 하다. 이번 영화에서 신인 배우를 쓴 이유도 벨기에는 아역 배우가 없어서이기도 한다는데 그게 그런 이유 때문에 법적으로 금지됐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도 배우를 새로 기용해서 그런 안 좋은 역할을 맡게 했는데 아역에 대한 나라별 법안에 대해 궁금해졌다. 가령 어떤 장면은 포함해선 안 되고 촬영 시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하는 지 말이다.

  영화 외적인 말이지만 난민 수용 문제는 윤리적, 사회적으로 많은 담론을 요하는 주제이다. 토리와 로키타 같은 상황에 처한 인물들을 내가 개인적으로 안다면 정말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주고 싶긴 하겠지만 그들과 같은 사람들은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냉정한 말이긴 하지만 사연 없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그들을 다 받을 수도 없고 어느 정도 한계선이 필요하다. 그러면 그 선을 어디에 그을 지도 새로운 문제가 된다. 선을 긋는다면 또 그 선 안과 밖에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는, 영화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문제는 되풀이 될 것이다. 근본적으로 나는 선을 그어서 완벽히 해결되지 않는 문제라면 선을 안 긋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미국인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시각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그들은 표현의 가능/불가능에 대해서 '이건 되고, 저건 안 되고'의 선을 그을 수 없고, 그어도 서로 싸우느라 소모가 심하기 때문에 긋지 않고 완벽한 자유를 선언했다. 물론 그렇다고 난민 수용 자체를 하지 말자고 이야기 하긴 어렵다. 다만, 영화가 아무리 감동적이고 슬프다 할 지라도 사람들이 난민 수용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찬성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다르덴 형제 분들을 이름만 들어봤지 작품을 하나도 보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도 비고 유명하신 분들이라 소셜링을 신청해서 거의 앞줄에서 볼 수 있었다. 여러 평론가들에게 GV를 듣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감독에게 직접 듣는 것은 처음이다. 내가 생각했던 것들을 감독 분들이 설명해주시니까 마치 출제자의 의도에 맞게 서술형 답안을 써서 맞은 학생이 된 것만 같았다. 형제들은 질문에 엄청 길게 답변을 해주셨고 저렇게 생각이 깊으니 명감독이 되시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감독들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것도 좋았는데 포스터 엽서에 싸인 받는 것은 큰 영광이었다. 살면서 싸인을 처음 받아보는 것 같은데, 그게 다르덴 형제의 것이라니 이는 평생 기억될 것 같다. 진행을 맡은 김세윤 작가와 좋은 질문을 해주신 이주영 배우, 그리고 그 많은 말들을 정확하게 통역해주신 통역가 분, 예매하고 공유해주신 분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