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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2023, 조나단 글레이저)

들어가며 

  감각 적응(sensory adaption)이란, 특정 자극에 지속적으로 노출될 때 그에 대한 감각이 줄어드는 현상을 말한다. 계속되는 소음에 무뎌지거나, 처음에 강하던 향도 시간이 지나면 잘 맡을 수 없게 되고, 피부가 의자나 옷에 닿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그 예다. [1] 사람들은 그들의 눈과 귀를 채우는 뉴스에도 역시 적응한다. 정치인들의 비리, 공정하지 않은 법안, 전쟁과 부조리가 풍기고 내는 악취와 소음이 이미 전세계를 가득 채우고 사람들의 감각은 마비된다. 가끔 가다 도처에 깔린 흉물들을 뚫고 나오는, 유명인들의 이슈와 동물 사진 등의 새로운 자극에만 사람들의 관심이 쏠린다. 그렇게 악이 평범해진 사이, 악인들은 대중들의 무관심 속에서 오물들을 열심히 쏟아내고 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역설과 아이러니를 통해 관객들에게 '극렬한 대비'를 적응시키는 참신한 시도로 '적응되는 악, 악의 평범성'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다. 

 

그 시절 나치와 국민들

  '존 오브 인터레스트 (The zone of interest)'는 독일어 'Das interessengebiet'를 번역한 말로, 아우슈비츠가 있던 폴란드 지역 일대 40km²를 가리키는 단어였다. 한국어로 풀면 '돈 되는 구역'이다. 독일은 전체적으로 44000개가 넘는 감금 시설을 운영했으며 [1], 대부분 유대인의 교화, 강제 노동을 위한 것이었다. 그 중 6개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트레블링카, 베우제츠, 소비보르, 헤움노, 마이다네크)는 절멸 수용소 (Vernichtungslager)로 분류되어 있다. [2] 이 곳에선 다른 수용소와 달리 노동이나 실험이 아닌 무차별 살육을 진행했다. 이 6개는 모두 폴란드에 위치해 있으며 희생자는 대략 250만명에 이른다. [3] 나치는 장애인이 아닌 게르만족 이외에는 사람이 아닌, 없애거나 도구로 이용해야 할 무언가로 인식했으며 그 한참 비뚤어진 신념이 단어에 그대로 녹아 들어가있다. 당연하게도 어떤 한 사람 혼자 이 일을 행할 수는 없다. 수용소에서 일하던 나치 군인들만이 한 일도 아니다. 이것을 저지른 것은 그 뒤에 있던 나치 장교들, 그리고 그들에게 권력을 주고 모든 일을 용인한 국민들이었다. 

 

  1945년 4월, 미군이 독일 바이마르 주의 부헨발트 강제 수용소를 해방했을 때 인근 주민들을 데려다 그 참상을 보게 했다. [4]  부헨발트는 수감자들을 성적으로 학대하고 유대인의 피부로 전등 갓을 만들고 두개골로 식탁을 장식하는 수용소장의 아내 '일제 코흐'로도 유명한 수용소로, 이날 그녀의 물건들까지도 시민들에게 공개되었다. 많은 이들은 학살을 부정하는 등 혼란에 빠졌고 '우리는 몰랐다.'고 답했다. 이 내용은 부헨발트 수용소 기념관에도 전시되어 있다. 물론 수용소 내부의 도 넘은 광기는 몰랐을 것이다. 하지만 나치는 게슈타포를 동원해 유대인들을 대대적으로 적발해냈고 사람들의 신고도 받았다. 그러니 '국가가 유대인들을 강제로 잡아들이고 있다'는 사실은 국가에서 공인한 것이다. 그 뒷일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더라도 그것이 면죄부가 되진 않는다. 애초에 독일인들은 명분 없는 전쟁에 환호했으며 유대인들의 일이니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의 무관심 덕분에 정부가 악행을 저지른 것이니, 그들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대비의 적응

  영화는 이 추악한 인간상, 인간의 밑바닥에 대해 말하기 위해 2분이 넘는 시간 동안 검은 화면과 하강하는 불쾌한 음성을 들려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바닥에는 평화롭고 단란한 가정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총성과 비명이 가득한 아우슈비츠 근처 호화로운 집에 살며, 유대인을 노예로 쓰는 나치 장교 가족이다. 이것에서 시작해서 영화는 '대비'를 떠올리는 장치들을 많이 보여준다. 회스의 가족은 생기있고 컬러풀하지만, 폴란드 소녀가 밤 중에 몰래 유대인 캠프에 사과를 놓는 장면은 네거티브하다. 회스 집의 벽 안은 사이 좋은 부유한 가족이 있지만 밖은 생지옥이다. 안에선 아이들이 뛰노는 소리와 일차원적인, 나치를 빼도 문제 없는 '정원 가꾸고, 장모님이 이사오고, 남편이 전근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가 진행되지만 밖에선 총소리, 비명, 유대인들을 소각하는 화염과 그 후의 연기와 냄새가 가득하다. 그리고 이런 대비는 1시간 44분 동안 지속되며, 익숙해지게 하면서도 그럴 때면 불쾌한 소리와 인위적인 장면들이 들어오며 경고를 한다. 영화 시작에 나오는 검은 화면, 그리고 중간의 하얀색과 빨간색 화면은 이 익숙함을 거부하고 있다. 우리가 익숙해지려는 사이, 나치의 색들은 강렬하게 사람들 눈에 새겨진다.

 

  많은 홀로코스트 영화는 폐허와 시체들로 전쟁의 참상을, 절규하는 유대인들로 나치의 잔혹성을 보여주지만 영화는 이를 반대로 적용했다. 유대인들과 전쟁을 사운드로만 보여주고 이를 배경음으로 이용한 채 평범한 일상을 지내는 군인 가족을 보여준다. 영화의 끝에선 이를 또 반대로 대칭시켜 이미지로 보여준다. 이때는 기념관 직원들이 청소하는 평범한 일상을 사운드로 들려준다. 영화가 끝날 때는 시작할 때와 대칭적으로 상승하는 멜로디가 들려오는데 이는 절규와도 같은 소리이며 오프닝에선 점점 평화로운 소리가 들려온 데 반해 배경음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진다. 현실로 다시 돌아왔을 때, 영화에서 그려지는 과거와 별반 다를 것 없다는 말이다. 이외에도 영화는 모든 악행과 대비들을 극적이지 않게 보여준다. 그렇게 그들은 영화 속에서 평범해진다. 악행을 실제로 저지르는 자들은 분명 있지만 행동하지 않는, 그리고 그 악에 적응해버린 다수에 의해 악은 평범해진다. 마치 무한소처럼, 죄책감을 큰 인구수대로 나누니 0에 수렴하게 되는 것이다. 

 

  대비와 무뎌진 죄책감은 우리의 일상 속에도 있다. 가까이는 고독사하는 청년, 노인들, 신체가 불편해 기초수급으로만 생계를 유지하는 쪽방촌 사람들과 이미 많이 가졌음에도 부정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며 사치와 향락에 빠진 사람들의 대비, 멀리는 전쟁 속에서 집이 미사일에 날라가고 종교적인 이유로 죽임을 당하고 혼란 속에서 강간을 당하는 피해자들과 저녁에 무슨 술을 마실지, 무엇을 시켜먹을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다. 전자의 사람들은 우리는 절대 모르고 있지 않다. 뉴스나 다큐멘터리에서 매번 보여주는 경제적 불균형의 다수의 피해자들, 전쟁으로 가족을 잃고 오열하는 사람들을 매일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이런 대비에 익숙해졌다. 옆나라에서 일어나는 학살과 전쟁,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고독사와 자살은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다. 나를 포함한 다수는 이 영화를 보고 악의 평범성을 다시금 생각했으면서도 선뜻 행동하지 못하는 것은 블랙 코미디다. 오늘날 히틀러와 같은 사람이 정치권에 다시 나와도, 반대는 하더라도 목소리를 내며 활동하진 않을 것 같다. 가톨릭에서는 악은 선의 부재라고 해석한다.전체적으로 악이 활개치기 참 좋은 세상이다. 

 

 

 

[1] https://study.com/academy/lesson/sensory-adaptation-definition-examples-quiz.html#:~:text=Sensory%20adaptations%20are%2C%20for%20example,longer%20noticed%20on%20the%20skin.

[1] https://encyclopedia.ushmm.org/content/en/article/nazi-camps

[2] https://www.yadvashem.org/de/holocaust/about/final-solution/death-camps.html#:~:text=Die%206%20Vernichtungslager%20Chelmno%2C%20Belzec,Teil%20der%20%E2%80%9EEndl%C3%B6sung%E2%80%9C%20durchzuf%C3%BChren.

[3] https://ko.wikipedia.org/wiki/%EC%A0%88%EB%A9%B8_%EC%88%98%EC%9A%A9%EC%86%8C#cite_note-5:~:text=%EB%B0%96%EC%97%90%20%EC%A3%BC%EC%96%B4%EC%A7%80%EC%A7%80%20%EC%95%8A%EC%95%98%EB%8B%A4.-,%ED%9D%AC%EC%83%9D%EC%9E%90%EC%9D%98%20%EC%88%98,-%5B%ED%8E%B8%EC%A7%91%5D

[4] https://encyclopedia.ushmm.org/content/en/film/german-civilians-forced-to-view-atrocities-committed-in-buchenwald